동산지기

현절사.. 낙엽... 그리고..

동산지기(최종덕) 2003. 11. 5. 12:17

하얀 서리가 햇살에 반짝거리는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자그만 옛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언뜻 보아서도 사찰 같지는 않고 명문대가의 사당쯤으로 짐작이 되는 곳..
그 앞에는 군락을 이룬 단풍 숲이 찾아오는 나그네들을 반기고 있다.
발아래 메마른 단풍잎들의 고운 자태는 비단을 깔은 듯하고
한포기의 코스모스는 현절사라는 안내판 곁에서 가을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다.


현절사..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와의 결사항전을 외치다가 끝내
심양으로 끌려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의 충절을 기린 사당이라 한다.
남한산성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부끄럽고 망신스럽다.
저들의 충절이 역사에 심겨져 꽃이 되고 숲이 되었건만
그 흔적마저 잊고 있었으니 수치가 아니고 무엇이랴..


사당의 담벼락을 끼고 오르는 등산로는 어느새 떨어진 낙엽들로 가득하다.
마주보이는 산등성은 어느새 마지막 겨울채비를 서두르고 있고
푸름이 돋보이는 소나무들은 이별을 아쉬운 듯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낙엽을 밟으며 오른다.


발아래 밟히는 낙엽들...
이별의 고통마저 마다않고
내일을 위한 거름되기를 자청하고 마지막 바스락거림마저 기쁨이라 말한다.


동심을 깨우치는 아름드리나무의 죽은 가지들..
땔감을 얻기 위해 매미처럼 나무에 기어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나무들이지만 왜 죽은 가지들이 생기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그 가지들은 항상 맨 아래에 있는 오랜가지였고
그 나무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커가고 있었다.


새순을 얻기 위해 버리는 가지들의 희생..
이 또한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또한 내일을 위한 오늘의 희생이란 말이던가?


무슨 사연이 있기에
몸이 뒤틀리다 못해 마냥 꼬인 채로 죽은 나무둥치는
아직도 하지 못한 말이 있는지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네가 밟고 선 땅의 비밀을 아느냐고..
희생이 무엇인지 헌신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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