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불법성의 근거인 직권중재제도, 과연 정당한가?
신홍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직권중재 제도는 잘못된
제도"
기성 언론들이 이번 철도파업을 보도하는 태도를 보면 한결같이 "철도노조 불법파업, 시민불편 가중"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철도가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사들은 이 특별할 것도 없는, 아주 당연한 것을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 시민들의 불편을 부각시킨다. 시민들의 불편을 부각시켜 파업을 하면 안된다고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파업은 대한민국의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다. 파업권은 마땅히 존중돼야하고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한다. 시민들의 불편이 생긴다는 이유로 파업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기본 법질서, 나아가 세계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불법파업?
대한민국의 기본법 질서를 지켜야한다고 강변하는 언론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피하고 파업 반대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이기는 하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 파업이 된 것은 직권중재 관련 파업중단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중도적이라고 자처하는 한 재벌 언론사의 3월 2일자 사설 '명분없는 철도파업 당장 중단하라'를 보면,
"우리는 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파업권은 상당한 사회적 손실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존중돼야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 파업이 불법일 때는 전혀 얘기가 다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그제 밤 철도동사 노사 간의 협상이 결렬된 직후 이를 직권중재에 회부했다. 직권중재에 회부되면 15일간 모든 쟁의행위가 금지된다. 결국 철도공사 노조는 번연히 불법인 줄 알면서 파업을 벌인 것이다. 정당한 파업권의 보장을 위해서라도 법을 무시한 파업은 절대 용인돼서는 안된다" 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파업의 불법성을 바탕으로 이후 논리를 전개해나간다. 이는 우리 나라의 언론사들이 철도노조의 파업을 비판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한결같은 논리 전개 방식이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이기 때문에 철도공사와 정부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강경하게 나갈 수 있다. 또 언론사들은 일방적으로 노조때리기로 일관한다. 불편을 겪는 시민들의 모습을 양념으로 곁들여가며...
그러나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이 되도록 한 결정적 근거인 '직권중재 제도'가 과연 정당한 근거가 될 되수 있을까?
철도파업 불법의 근거인 직권중재제도, 과연 정당한가?
우리 나라의 언론사들이 악의적으로 사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바람에 국민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서 그렇지, 정확히 사실을 알고보면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가혹한 노동탄압국으로 분류돼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 조약은 모두 8개로서
△제 29조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
△제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조약
△제 90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조약
△제 100호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노동자의 동일보수에 관한 조약
△제 105호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조약
△제 111호 고용 및 직업과 관련한 차별에 관한 조약
△제 138호 고용이 허용되는 최저연령에 관한 조약
△제 182호 최악의 아동노동 형태에 관한 조약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 나라는 이들 조약 가운데 노동자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파업)권에 관한 조약인 제 29호, 87호, 90호, 100호 조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참고자료 : Ratifications of the ILO Fundamental Conventions (2006년 3월 6일 통계자료)
참고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나라처럼 노동 3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나라도 드물다.
정부와 철도공사가 이번 철도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게 된 근거인 직권중재관련 조항은 우리 나라가 노동탄압국이라는 오명을 쓰게하는 대표적인 노동악법 조항으로서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제도다. 이 직권중재 때문에 한국은 ILO가 지정하는 노동탄압국가로 돼 있는 상태다.
신홍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직권중재 제도는 잘못된 제도"
심지어는 직권중재를 결정하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신홍 위원장 조차도 "직권중재는 잘못된 제도"이라고 고백할 정도다. 신홍 위원장은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가 이번 철도 파업에 동조하지 않고 있으며 중앙노동위원회는 (정책집챙기관일 뿐) 정책결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직권중제 제도의 운용은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
한편, 이번 철도노사의 교섭 이 전부터 철도공사는 성실히 교섭을 하지 않고 처음부터 직권중재를 염두에 두고 중앙노동위원회를 사전 접촉 하려는 부정한 시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홍 위원장은 "철도공사 쪽에서 본인을 직접 찾는 전화를 대여섯차례 해왔으나 노사의 자율교섭 존중 원칙을 지키기 위해 철도공사의 전화통화를 모두 거절했다"고 고백했다.
신홍 위원장의 현명한 처신으로 철도공사쪽의 비양심적인 시도가 현실화되지 못했지만 아무튼 철도공사가 교섭 전부터 신홍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찾아 전화로 로비를 벌이려했다는 것 자체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철도공사의 부정한 시도에서 볼 수 있듯이 단체교섭을 할라치면 사측에서는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직권중재를 요청해 결국 단체교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리고 지하철, 철도, 병원, 정유, 항공 등 공공부분의 노동조합은 파업권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정부여당의 자가당착 "직권중재제도 폐기하겠다" "직권중재제도 위반한 불법 파업 엄단"
과연 이것이 정당한 논리인가? 정부와 철도공사가 자신들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파업의 불법성. 그러나 그 불법성의 근거가 되는 직권중재 제도 그 자체가 넌센스라면 과연 정부와 철도공사의 정당성의 근거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미 지난 1월 17일 정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직권중재 제도가 잘못된 제도이고 국제적으로 한국을 노동탄압국으로 전락하게 만든다는 것을 공감하고 "직권중재 제도를 폐기하겠다"고 공표하기까지 했다.
정부 여당과 철도공사는 스스로도 직권중재 제도가 잘못된 제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직권중재 규정 위반을 근거로 법의 칼을 가차없이 휘두르는 데 양심에 괴로움이 전혀 없어 보인다. '법적안정성'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구체적 타당성'은 대등하게 소중한 가치다. 이렇게 직권중재제도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중재 제도를 위반했다는 것을 근거로 파업관련자들을 엄단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자가당착'이며 '양심불량'이다.
초등학생 명예기자단 보다 못한 한국 언론
일전에 한 외신이 정치인들의 작동 방식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정보가 들어오면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정신병질적인 양상이다. 그 보도를 성추행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의원을 옹호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실감을 했는데, 이러한 정신병질적인 현상이 한국에서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언론인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직권중재 회부 → 불법파업 → 해고, 손배가압류, 구속'의 수순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공식화 돼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언론사들은 늘상 진실을 감추고 "시민불편 가중" "산업계 큰 손실로 파장 일어"라는 식의 헤드라인으로 일관한다. '파업하면 시민들 불편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는 그 정도의 보도라면 초등학생 명예기자단도 언론사 기자생활을 할 수 있고 논설위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의 모순을 감추고 표면적인 불법성만을 부각시키는 우리 나라 언론들의 태도는 참으로 가증스럽다. 하자 있는 근거를 가지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억지주장이라는 것은 논술공부를 하는 초등학생조차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언론사들은 천연덕스럽게 "직권중재 위반했으니 불법파업"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은 사측에 편향된 보도를 넘어서 '허위보도'다.
과연 우리 나라에 언론다운 언론을 하는 언론사가 몇이나 될까? 지금의 한국 언론은 파업이 불법이라며 무조건 백안시한다. 그들의 주장의 정당성의 근거가 대단히 취약함에도 아랑곳 없이 떠들어댄다.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이번 파업에서 주장된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철도의 공공성문제를 여론화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대한민국이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그냥 그게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수용불가능한 주장이라고 (사측 입장에 서서) 단정해버린다. 참 한심하고 우려스럽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철도노조와 철도공사 서로 신뢰하고 교섭을 재개하길 바란다
이번 철도파업 과정에서 노조의 주장 가운데 공사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두가지라고 보는데 해고자복직문제와 서민들을 위한 철도의 공공성강화 문제다. 나머지 다른 주장들은 충분히 교섭을 통해서 (점진적으로나마) 개선이 가능한 것이고 실제로 내부적으로 교섭도 상당히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해고자복직문제에 관해서는 노조가 왜 파업으로 문제를 풀려하는지 나는 잘 이해가 안된다. 정당한 해고라면 복직이 안되는 것이고 부당한 해고라면 당연히 복직되어야하는 것 아닌가? 만약에 해고의 부당성이 확실하다면 제도적인 구제 절차를 먼저 거쳐야한다.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다.
물론 노동관계법에 하자가 없어야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다시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국제적으로 소문난 노동탄압국이다. 법의 하자가 많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법의 하자를 다투는 문제에는 참 지루한 과정이 기다린다. 그 지루한 과정에서 해고노동자들의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줘야한다.
공공성강화 문제는 매우 철학적인 문제다. 이런 문제를 바로 언론들이 다뤄줘야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철학적인 토론문화가 없는데다가 정상적인 언론사도 없다. 대부분이 황색 언론들이다. -스포츠연예만 황색저널리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보도에도 황색저널리즘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광풍에 휩싸인 대한민국에서 공공성강화 문제는 대중적 아젠다로서 수립되기도 대중적 설득력을 가지기도 힘들지만 그럴수록 언론은 더 신경을 써야한다.
지금 철도공사는 구조적으로 적자상황에 있다. 10조에서 20조에 이르는 적자 상황에서 서민들의 복지 수준을 높이는 철도의 공공성강화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세금부담문제가 나온다. 가진 자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고 종합적인 세제개혁을 동반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세금제도가 시원찮아서 그런지 서민들은 서민들의 복지 수준을 높인다는 철도의 공공성강화 주장에 동감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노조는 좀 더 깊은 연구를 통해서 공공성강화의 점진적 접근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철도노조 혼자서 감당할 문제가 아닌데 철도노조 혼자서 먼저 파업으로 치고 나오니 시민들이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조와 공사는 서로 신뢰하고 교섭을 재개하길 바란다. 철도의 공공성 강화처럼 현상황에서 당장 풀리기 어려운 문제를 철도노조와 철도공사만 다루려하지 말라. 언론사들을 계몽시켜서 이슈화해나가길 바란다. 언론사들이 정신 못차리면 인터넷등 대안언론을 통해 직접 대화하길 바란다.
그리고 철도공사의 이철 사장께 당부하는데 파업관련자들을 법에 따라 엄단하겠다는 공언, 우리 나라의 법 자체가 엉터리라는 점을 감안해서 부디 그들을 선처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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