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신학대학원은 교회에서 출발하면 한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너무 불편한 곳이었다. 교회 승합차를 가지고 다녔던 터라 가능하면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가기를 원했고 섬기는 마음으로 그 일을 자원했었다.
즐겁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문제로 늘 마음에 부담을 주는 이가 있었다. 몇 번이고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하지 못했다. 내가 속 좁은 사람으로 비쳐지고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신세대들의 당돌함과 자기의사 표현방식을 보며 놀라곤 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이나 자신이 하는 말로 갈등이 야기될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 혹은 친밀감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침묵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선한 사람들의 정당하고 옳은 행동이라 여기는 까닭이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상호간의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 정당한 대화가 단절되고 침묵을 계속하는 경우에 나타날 폐해가 있다. 즉 타인에게 나를 알리지 못하는 것과, 말하지 않음으로 꺼려하는 일을 맡게 되거나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자신을 병들게 할 것이다.
침묵으로 형성된 관계는 위장된 평화이며 건강한 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친밀한 관계 혹은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데 있는 것이지 결코 자신을 속이는 침묵에 있지 않다. 그것이 부부간의 관계이든지 교회 공동체의 관계이든지 할 것없이...
한 모임에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있다. 어찌하다가 우리 사역자들의 잘못된 침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연합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조찬기도회에 초청하고 전화 확인까지 한 후에 참석 예상 인원에 따라 음식을 준비하였는데 "참석하겠습니다". 혹은 '약도까지 물으며 알았다' 라고 하던 이들이 대거 불참을 하는 사태가 있었다. 실무진 입장에서는 이런 낭패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로 사전 양해를 구하거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그들이 확인을 위한 전화를 받았을 때에 거절해야 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참석하겠다고 말한 것도 전화하는 이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침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직,간접으로 상처를 주고 말았던 것이다.
적당하게 자신을 감추는 것이 선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솔직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일게다. 다만 어떻게 상대방에게 불쾌감 없이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겠다. 이제는 침묵이 금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와 자신의 감정을 지혜롭게 표현하는 기술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