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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의 묵상

동산지기(최종덕) 2005. 3. 20. 08:52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순례자들은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술렁거렸습니다.


성경은 그 때의 상황을

온 성이 소동하였다고 묘사합니다.


그 까닭은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했던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스가랴9:9)


수많은 기적들을 보이시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시던 예수께서

나귀의 새끼를 타고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자신들에게 임하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저들은 선지자의 말대로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땅에 펴고

왕으로 오시는 예수를 기쁨으로 맞았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마21:9)


유월절 명절로 인하여

북적거리던 성중의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었던 이름이

자신들의 목전에 있다는 사실에

이 날의 소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술렁거림도

예수를 향한 기대감도 그리 오래되지 못했지요.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께서

그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는 모습은

저들이 기대했던 구원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호산나를 소리 높여 외치며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말하는 저들...


저들이 기대하는 구원자는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문제로부터 자유하며

다윗시대의 번영과

솔로몬 시대와 같은 평화를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감은 곧 실망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금방 분노와 저주로 바뀌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성난 군중들로 돌변해 버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구원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인간의 필요와

예수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구원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당장의 갈증과

눈에 보이는 매임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하나님이 보신 인간의 필요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지요.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냐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목받는 문제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보다는

현세적인 갈증을 구하고 이기 때문이지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든

그것을 받는 사람이든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는 분명해야 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