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을 장사지내고 돌아온 형들에게 밀려든 것은
아비를 잃은 슬픔이 아니라
요셉에게 저지른 과거의 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미 애굽에서 대면할 때에
용서하는 요셉의 진심을 들은 그들이었지만
여전히 형들의 마음 속에는
용서받음에 대한 완전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마음에 일어나는 죄책감은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에게 저지른 죄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대가는 요셉이 홀로
고난의 세월을 통해 다 감당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하며
형들의 허물을 책망하지 않고 용서했지만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 그들이었기에
아비의 죽음을 계기로
요셉이 그 때의 죄에 대한 대가를 찾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팔고
자신들이 지불할 대가로 종들이 되기를 자청한다.
형들의 말을 듣던 요셉은 울었다.
억울하고 분했던 옛 상처가 생각나서일까?
하지만 아니다.
자신의 진심어린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수한 세월을 죄책감에 매여 살았을 형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을 들추어 내신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과 용서가
이미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주께 지불한 대가가 없기에
그 죄의 무거운 짐을 그대로 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법정에서 죄의 값을 치르고
나온 사람들은 마치 그것만으로
하나님에 대한 용서마저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단은 우리에게 끝없는 죄책감을 가져다 주며
우리 안에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며
내 안의 어떤 선함이나 대가를 말하지만
하지만 사실은 어떤가?
요셉이 형들을 이미 용서한 것처럼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우리 편에서 어떤 대가지불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시려는
그 영원한 언약안에서 허락된 완전한 속죄이다.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속죄!!
더 이상 나의 어떠함으로 판단치 말고
오직 믿음으로 자유함을 누리며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우리가 되자!!
- 창50장 묵상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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