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지기 묵상

처소를 예비하시는 주님

동산지기(최종덕) 2007. 4. 5. 17:48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명하셨다.


성막!!

‘거주지’ 라는 단어의 뜻이 말해주듯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하나님의 처소였다.


성막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보좌였으며

언제나 영광의 구름으로 덮였고

천사들이 둘러선 거룩한 곳이었다.


성막을 중심으로 진치고 행진했던 이스라엘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거기서 당신의 백성들을 다스리며 보호하셨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애굽기25:22)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에

그 고단한 광야의 길에서

정교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가

희생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던 모세의 말처럼

죄인을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당신의 임재 앞에 살아가는 친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성막은 주를 만나고 예배하는 곳...

또한 그곳에 임하셔서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처소이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실지라도

죄를 가진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거나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빛 앞으로 어둠을 밀어 넣을 수 없듯이

거룩함과 죄는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의 문제이다.


지성소를 구별하여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게 성소의 휘장에는

거룩한 천사, 곧 그룹 형상이 새겨져 있고

4중으로 덮는 성막 덮개 중 맨 안쪽은

그룹의 형상이 새겨진 세마포로 만들어졌다.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날 때에

하나님은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막으셨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길은 존재적으로 불가능했다.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들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꿈꾸셨던 창조의 원형...

그것은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되찾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계획이며 구원의 목적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임마누엘의 사건은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신 하나님의 일이며,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며

십자가의 길에 오르신 주님...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십자가에서 주님의 몸이 찢기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통해 보여주신 일이다.


죄로 인하여

당신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던 우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당신의 임재 가운데로 부르시는 하나님...

영원히 기뻐할 우리의 노래요 주제이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에스겔37: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