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지기 묵상

맛을 잃은 소금

동산지기(최종덕) 2007. 3. 13. 18:09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천만 명에 육박하는 성도를 자랑하지만

정작 불신자들에게는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는

한국교회의 비참한 현실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


맛을 잃은 소금/

그래서 사람들의 발아래 비참하게 밟히는 소금/

아무데도 쓸모없는 존재감의 상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소금들이

맛을 내기를 거부하고 항아리에

꼭꼭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자기희생을 거부하는 소금창고가 되고

그 분량과 크기만 자랑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부터 소금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맛을 낼래야 낼 수가 없는 거라고...


이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맛을 낼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세상에서 맛을 내는 소금이라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주께서 소금이라고 하신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살펴보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아무 사람이나 붙들어 세우시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이 말의 배경과 전제되는 사실은

소금이 아닌 자들을 소금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선포는

저들 안에 존재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에덴에서 쫓겨나던 날부터

사람들은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피조물들에게조차 비참하게 밟히는 존재로 전락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는,

그래서 처절하게 발에 밟히는 인생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조롱과 멸시를 대신하셨습니다.


세상의 소금은 이때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흘러들어

더 이상 발에 밟힘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맛을 내는 소금들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을 담지 않은 빈항아리는

아무리 깨고 깨어도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소금이냐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교회를 향해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정말 소금이라면

그 맛을 우리에게 한번쯤 보여주라고...


그리고는 묻습니다.

정말 당신들은 소금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