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지기 묵상

피의 제사

동산지기(최종덕) 2007. 3. 3. 20:14
 

피의 제사

에덴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땅을 일구어야하는 농사법이 아니라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서 회복할 것이며, 죄의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었다. 처음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에덴에서 생활했던 사람들... 그 때에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특별한 제사나 의식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인생의 행복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와 죄를 지어 쫓겨났을 때가 서로 달라지는 것이라면, 쫓겨난 에덴을 말끔히 잊어버리고 땅에서 농사짓는 법에만 신경쓰면 된다. 하지만 인생의 행복은 처음부터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되고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 행복을 위해서라도 인생의 최대 과제는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이 관계회복을 원하셨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동물을 죽여 가죽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죽음을 보았다. 죽음으로 그 가죽옷을 내어주는 그 희생의 피를 본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이 희생제사를 통한 만남이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대가, 곧 죽음을 치르고서야 만날 수 있는 대속의 방식이었다.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피의 제사...

살아있는 짐승에게 상처를 내고 피를 받아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반드시 목숨을 끊어 죽음을 드려야 하는 의식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취하시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할 수 없었는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식이었다.

 

세상의 종교들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간의 선행과 업적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자신의 최선이나 정성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대속의 죽음을 통한 구원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원리는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가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죽이기 위해 금욕과 고행을 반복하여도 인간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심지어 자시의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는 스스로의 욕망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욕망을 죽음으로 드러낸 것뿐이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를 죽이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대속의 죽음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것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제물이 되어 죽는 것이며, 우리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가능해졌고,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허물과 죄는 주의 죽으심을 통해 만드신 가죽옷, 즉 보혈의 공로로 얻어지는 의의 옷으로 가리어진 것이다.

 

피의 제사..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완성하신 구원의 길에 믿음으로 들어서자!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 곧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어 주를 따르는 것, 그것이 잃어버린 에덴을 찾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