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3과.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요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잠23:7에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런한 즉...” 이라고 하였다. 도덕을 가르치는 선생이 모두 도덕군자가 아니듯이 복음을 말하고 설명한다고 해서 복음으로 사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멕가이버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배한성씨는 정작 못 하나 박을 줄 모른다고 한다. 복음으로 사는 것과 복음을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1. 복음에 일반인들의 태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에 대하여 불신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미련하고 어리석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사람들은 예수를 거절하고 복음에 대하여 냉담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죄로 굳어지고 상한 심령들이 십자가 복음을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경을 끼고 사는 사람들... 태어나면서부터 교회를 출입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무시를 당한다면 이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 복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
오늘 본문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하고 영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정작 복음이 되어 오신 예수는 거부하고 영생을 위해 주께로 나오지 않는 모순됨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으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이 정작 자신은 복음과 상관없는 산다면 비극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 예수 믿을 때 통과의례처럼 하는 것이지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복음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성도는 매순간 복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열심이나 최선으로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화폐가 더 큰 문제인 것처럼, 복음을 인정하고 복음에 대하여 할말은 다 하지만 삶에는 아무런 연관을 짓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1:16) 교리적 이단보다 행위이단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자.
☞ 자신의 말로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가?
☞ 그 복음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복음을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 내 자식이 저 아프리카 오지에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하면 흔쾌하게 동의할 수 있는가?
청소년 사역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자기 자식이 성경공부하고 기도회 참석하는 것보다 수능시험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우리가 아닌가?
“그(복음)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복음이)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복음을)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잠4:8)
<기도> 복음과 무관하게 살고 복음을 복음답게 대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자!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십자가를 높이며 살겠다고 고백하자 주께서 여러분의 삶을 높이고 여러분의 삶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