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정당합니까?“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주님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마치 새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지는 사냥꾼의 올무와 같습니다.
로마황제가 식민지의 사람들에게
호적령을 내리고
각 사람에게서 인두세를 받는 것을
몹시도 꺼림칙하게 여겼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득에서
이방인에게 바친다는 것도 그러하고
황제의 형상이 그려진 화폐 자체도
그들에게는 못마땅한 것이었으니까요.
예수를 잡으려고
온갖 궁리를 하다가 생각한 것이
예수를 로마에 반역하는 자로 몰아서
그를 이방인의 손에 죽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교묘한 저들은 자신들의 제자들을 앞세워
로마정권에 빌붙어 사는
헤롯당원들을 증인으로 대동하고 왔습니다.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 하심이니이다.“(마22:16)
마음에 없는 말로 아첨하고
온갖 화려한 언어들로 위장하는 저들...
그 질문 속에 감추어진 속셈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로마황제의 명을 어기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흉계를 주님은 이미 아셨고
오히려 저들의 불순한 동기가
스스로 주님의 실체를 인정하는 셈이 되었지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내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 전환하신 주님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지도자들을
인정하고 질서에 따르는 것이 옳지만
더 근원적이며 실제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침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들을
결코 포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라도
자신의 것을 받으시고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모든 이들이
각 나라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주의 영광과 찬송이 드려지는 날...
온 땅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회복되고
모든 나라와 족속 가운데서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영광과 찬송의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